2013년 9월 8일 일요일

[3만원의 기적] 기아대책 필리핀 ‘어린이결연사업’ 영적 교사 양성, 지역사회 변화시켜

[3만원의 기적] 기아대책 필리핀 ‘어린이결연사업’ 영적 교사 양성, 지역사회 변화시켜



세계 3대 빈민지역, 필리핀 숯마을 톤도 스모키마운틴의 쉐를린 양

3만원의 기적! 이 작은 돈이 지구촌 곳곳 한 어린이의 삶을 온전히 변화시키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국민일보는 ‘떡과 복음’을 전하는 미션 NGO 기아대책(회장 정정섭)과 함께 가난과 질병에 신음하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3만원의 기적, 한 어린이의 삶이 변화됩니다’ 캠페인을 시작한다. 오는 6월까지 격주로 8회에 걸쳐 네팔,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라위 등의 아이들 사연이 소개되며, 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교회와 성도들의 사랑나눔 실천도 함께 보도된다.

쉐를린은 크고 맑은 눈이 유난히 돋보이는 아이였다. 하루 종일 딱딱한 나무 바닥에 누워 있어야 했지만 아이는 취재진을 향해 아름다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차라리 눈물을 흘렸다면 보는 이의 마음이 조금은 덜 무거울 것 같았다.

지난 2월 11일, 필리핀 최대 빈민지역인 톤도의 숯굽는 마을(스모키마운틴)을 찾았다. 쉐를린의 집은 부서질 듯한 수직 사다리를 2m 정도 오르고 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6.6㎡(2평)도 되지 않을 공간에 쉐를린과 그녀의 어머니, 이모가 함께 살고 있었다.

나무 바닥은 5㎝도 되지 않는 얇은 합판 5개를 이어 붙여 만들었고, 합판 사이는 군데군데 뚫려 있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 보였다. 바닥에는 단 한 장의 담요도 놓여 있지 않았다.
미겔 쉐를린(10)양은 7개월 전 발병한 뇌수막염으로 현재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상실했다. 뇌수가 시신경을 누르기 때문이다. 병마는 아이의 좌반신도 마비시켜 일어나 앉을 수도 없다. 하루 종일 들이마시는 매캐한 숯연기는 폐마저 손상시키고 있었다. 우리 돈 300만원이면 받을 수 있는 수술이 그녀에게는 기대키 힘든 ‘남의 일’이다.

쉐를린의 어머니는 온종일 숯가마에서 구워진 숯을 나르거나 쓰레기더미에서 재활용 가능한 물건을 분류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하루 수입은 6000원이 채 안 된다. 이 돈으로 기저귀를 사는 일도 버겁다. 기아대책 톤도 어린이개발사업(CDP)이 쌀을 지원하지 않으면 끼니도 잇기 힘들다.

교사가 꿈인 쉐를린의 학업은 초등학교 1학년에서 멈췄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절망의 기운은 없었다. “수술을 받아 다시 볼 수 있게 된다면 엄마의 얼굴을 보는 게 가장 큰 소원”이라는 아이는 “아직은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만 점점 희미해져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도심에서 쉐를린의 집까지는 10㎞ 정도다. 고층건물이 즐비한 마닐라의 풍경이 거대한 쓰레기산과 숯가마로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은 자동차로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세계 3대 빈민지역으로 알려진 톤도의 스모키마운틴은 ‘숯 굽는 마을’로도 불린다. 스모키마운틴의 5000여 빈민은 160여개 숯가마에서 7∼10일 간격으로 쏟아져 나오는 숯의 부스러기를 줍거나 못 등을 주워 팔아 생을 이어한다. 숯일조차 구할 수 없는 이들은 수년간 매립된 쓰레기더미에서 비닐과 플라스틱, 고철 등 재활용 가능한 것들을 모아 삶을 이어간다. 하루 종일 일해도 이들의 수입은 6000원 정도다.

마을은 거대한 쓰레기장 위에 세워져 비가 오면 온 마을에 악취가 난다. 흙 밑에 깔려 있는 비닐 쓰레기가 물의 투과를 막아 장화 없이 걷기 힘든 곳도 많다. 골목마다 쓰레기가 넘쳐나 길과 쓰레기장을 구분하기 힘들다.

마을 중앙에는 숯가마들이 모여 있다. 필리핀 서민 가정에서 조리용으로 쓰는 숯의 재료는 대부분 버려진 폐건축자재나 목재 가구들이다. 대부분 화학처리나 페인트칠이 돼 있어 마을의 공기는 유독가스에 가깝다. 매캐한 연기 탓에 마스크 없이는 5분도 서 있기 힘들었다. 톤도의 아이들은 쓰레기와 매연, 나무·못 조각이 가득한 곳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며 살아간다. 집이 없는 아이들은 빈 숯가마 위에서 담요 하나를 의지해 잠을 청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3∼4학년 나이가 되면 생활전선에 내몬다. 숯 부스러기를 줍거나 쓰레기 모으는 일을 하지만 아이들의 벌이는 900∼2000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노동이 없으면 삶이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교육은 뒷전일 수밖에 없고 교육에서 소외된 아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빈곤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톤도 CDP센터 책임자인 김형갑(47) 기아봉사단(선교사)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돈의 맛’을 알게 돼 스스로 교육현장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많다”며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의지를 키우고, 아이들 스스로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결연자가 월 3만원을 지원하면 한 아이에게 식량과 함께 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맑은 날에는 마닐라시의 고층건물이 육안으로 보인다. 그만큼 필리핀의 빈부격차는 가깝고도 멀었다. 김 선교사는 “도심의 고층건물이 높이 올라갈수록 빈민촌의 그림자도 깊게 드리워진다”고 말했다.

마닐라=글·사진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2013년 9월 6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