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27일 목요일

의과대학 해외의료봉사단, 필리핀서 ‘사랑의 인술’ 전파 (상)

 “휴가·방학 대신 해외봉사 다녀왔어요”… 현지인, 의료진 ‘반색’

의과대학 해외의료봉사단(단장 김성엽 기회부처장)이 필리핀 카비테주 등에서 지난 8일부터 5일간의 일정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교수 7명과 학생 18명 등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카비테주 주립병원과 ‘마리아수녀회 소년소녀의집’, 바탄가스 지역의 ‘Good Tree Church’에서 봉사활동을 벌였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필리핀에서 사랑을 나누고 돌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화에서는 봉사 첫째날의 이야기를 담았다.          <편집자주> 
▲ 해외의료봉사단이 지난 8일 카비테주 주립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A Soy Kimberly는 세상의 빛을 본지 8일된 필리핀 아기다. 그의 엄마는 돈이 없어서 집에서 Kimberly를 낳았다. 그러나 깨끗하지 못한 환경에서 태어난 아기는 결국 균에 감염되고 말았다. 어떻게든 아기에게 생명을 선물하려던 엄마의 욕심이 화근이었다. 아기는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체온이 펄펄 끓고 숨을 쉬는 것도 곧 넘어갈 듯 가쁘게 쉬어댔다. 하지만 엄마는 헐떡이는 아이를 앞에 두고 치료를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문제는 돈이었다.
필리핀에는 Kimberly처럼 ‘돈’ 때문에 병을 얻고 ‘돈’ 때문에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의료비가 비싸고 한국처럼 태어날 때부터 의무로 가입하는 국민건강보험이 필리핀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을 선물해줄 도움의 손길이었다.
의과대학 해외의료봉사단(단장 김성엽)이 새벽부터 바쁘게 길을 나선것도 이러한 필리핀 주민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기 위해서였다. 비행기로 4시간 동안 하늘을 가로질러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삐질 흘러내리는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공항에서 우리의 봉사 일정을 도와줄 KOICA(한국국제협력단) 단원들과 만났다. 본격적인 봉사활동이 시작된 지난달 9일, 봉사단이 찾아간 곳은 KOICA에서 설립한 한-필리핀친선병원이었다. 번듯하고 깨끗한 느낌이었지만 병실을 들여다보자 한 침대에서 산모 3명이 신생아 3명을 끌어안은 채 몸을 걸치고 있었다. 그나마 이 병원은 다른 곳에 비해 시설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한-필리핀친선병원 바로 옆에는 병원비가 무료인 카비테주 주립병원이 있다. 봉사단은 주립병원에 소아과, 산부인과, 재활의학과, 외과 등의 진료실과 약국을 마련해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한국의사들이 왔다는 소문 때문인지 주립병원 야외 대기실에는 의자가 부족해서 서서 기다릴 정도로 필리핀 주민들이 몰려왔다. 병원 복도에는 만삭인 배를 붙잡고 길게 줄지어 서 있는 부인들이 하나같이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적어도 첫 임신은 아니란 소리다.
정철희 KOICA 단원은 “필리핀 주민들은 거의 대부분 천주교를 믿어서 피임을 꺼려하고 낙태를 죄악으로 여긴다”며 “덕분에 출산율이 높고 병원에도 산부인과와 소아과 환자가 제일 많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심지어 성폭행을 당한 후 아기가 생겨도 필리핀 여성들은 거의 낙태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산부인과, 소아과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환자는 내과환자다. 더운 기후 때문에 음식이 짜고 기름져서 고혈압 등 성인병 환자가 많은 것이다.
봉사단 교수들은 현지 의사들과 함께 환자들을 진료하고 준비해간 약을 처방했다. 봉사단 학생들은 혈압을 재는 등 예진을 하고 각 과마다 1명씩 들어가 진료를 도왔다. 영어를 못하는 필리핀 주민들이 많아서 현지에서 교회에 다니는 한국인들이 통역사를 자처해 따갈로어를 번역해줬다.
소아과에는 주로 열감기로 오는 아이가 많았다. 김영돈(소아과) 교수는 설사로 찾아온 아이에게 물을 꼭 끓여먹고 손을 잘 씻을 것을 당부하며 약을 처방해줬다. 점심시간이 돼도 기다리는 꼬마환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김 교수는 밥먹을 시간도 미룬 채 한참이나 아이들을 맞았다.
오랫동안 무릎이 삐걱이는 고통을 참아오던 Francisco Panganiban(85세 필리핀)씨는 한국의사가 왔다는 소식에 반갑게 재활의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임상희(재활의학과) 교수는 무릎이 덜 아프게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아줬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드럽게 무릎을 움직이며 “한국인들이 무료로 진료해주고 약도 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환하게 웃었다.
Dimapilis Lourdes(67세 필리핀)씨는 장원영(외과) 교수에게 고름이 차올라 부풀어 오른 손등과 약봉투를 내밀었다. 칼질을 하다 손이 다쳐서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었는데 날이 갈수록 고름이 심해져서 약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물어보려고 온 것이다. 그 약은 항생제와 진통제였다. 약이 문제가 아니라 상처를 꿰맬 때 소독을 제대로 안 해서 고름이 생긴 것이었다. 장 교수는 고름을 빼내고 붕대로 손을 감아줬다.
주립병원 야외 대기실 풍경은 콩나물박스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자리가 없어서 늦게온 사람들은 모두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살갗을 부딪치며 서 있기 힘들텐데 다들 표정만큼은 밝았다.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는 모습이라기보다는 마치 어느 유명한 락밴드의 공연을 보러 몰려든 사람들 같았다.
▲ 소아과 진료(왼쪽)와 부인들에게 네일아트를 해주는 모습.
야외 대기실 한편에서는 봉사단 학생들이 솜사탕기계와 네일아트 테이블을 준비했다. 필리핀 주민들은 머뭇거리며 구경하다가 ‘free!(공짜에요)’라는 말에 수줍게 웃으며 다가왔다. 네일아트를 받은 Jocely(55세 필리핀)씨는 “일을 하다보면 손톱이 상하고 때가 잘 끼는데 네일아트를 받아서 너무 즐겁다”며 “덕분에 힘들었던 생활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Jocely씨는 매니큐어가 마르도록 손톱에 입김을 불며 소녀처럼 웃었다. 솜사탕기계 앞에는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까무잡잡한 아이들이 솜사탕을 받아들고는 솜사탕보다 더 하얗게 웃었다.
봉사단이 아이들에게 선물한 것은 한순간에 입에서 녹아버리는 솜사탕 뿐만이 아닐 것이다. 달콤한 맛을 떠올리기만 해도 언제나 행복하게 미소 지을 수 있는 추억을 선물한 것이다.
진료가 끝난 후에는 한-필리핀친선병원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고 병원 관계자들이 필리핀 전통춤과 노래공연을 선물해줬다. 환호와 함께 공연이 끝나고, 사회자가 갑자기 우리의 춤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엉겁결에 학생들은 원더걸스의 ‘노바디’에 맞춰 춤을 추게 됐다. 다들 쑥쓰러운 눈치였다. 음악이 나오자 환호성이 터졌다.
앉아 있던 사람도 절로 자리에서 일어나 리듬을 탔다. 결국에는 병원관계자들과 봉사단원이 함께 어울려 춤을 추게 됐다. 음악은 한국과 필리핀을 하나로 묶었다. 익숙한 한국가요 멜로디에 필리핀 특유의 억양이 의외로 잘 어울렸다. 생김새도 언어도 다른 우리들이 ‘봉사’라는 다리를 통해 처음 만나 두 손을 잡게 된 순간이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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